잠시 귀국한 딸을 보면서..

"치어리더"로 즐거운 작은 딸에게

(잠시 귀국한 딸을 보면서 2011년에 쓴 글을 올려둡니다.)

작은 딸이 올해 대학에 들어갔고,
이번 주 토요일에 예정되었던 낙남정맥 등산이 또 무산되어서,
강원도에서 만날까.. 하고 전화했더니, 요사이 "치어리더" 연습에 바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뜸 작은 딸에게 아빠는 "치어리더"를 좋아한다고 했습니다(저의 딸들과의 대화가 대게 이런 식입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치어리더"가 아니라 "치어리더" 정신을 사모한다고 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고,
늘 아빠식의 어려운 말이지만 무슨 말을 하시려는 겁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치어리더', '광대', 다자이 오사무로 이어지는 재미있는 대화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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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일본 작가 중에 "다자이 오사무"가 있습니다.
그는  1903년 일본 아오모리 현에서 태어나 1948. 6.에 자살한 소설가 입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인간실격"을 보면,
주인공 '요조'는 부유한 집안의 도련님으로 태어나 남들의 부러움을 받지만,
정작 본인은 한번도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그는 사회에 대한 적응과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가면'을 씁니다(요즘 심리학 책에는 '또다른 나', '가면속의 나' 즉 '페르소나'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요조는 '가면'을 쓰고  광대처럼(피에로처럼) 남들을 웃기고, 즐겁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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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는 전후 일본세대에게 '태어나서 미안합니다'라는 굴종적 자기혐오의 사상을
대표하는 작가로 불립니다만,
그의 에세이를 읽어보면 '자기혐오적 소설가'라는 평가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평가입니다.

그는 기독교의 "예수"를, 도스토엡스키를, "광대정신"의 찬양가라고 평가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죄인인 인간, 고통받는 인간이라고 우리의 본질을 고백한 뒤에,
그런 인간에게 구원이란,다른 인간을 사랑하는 것, 적극적으로 즐겁게 해주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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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작은 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치어리더"는 광대다. 피에로다.
광대나 피에로는 남들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다.
가장 완미한 삶은 남들을 즐겁게 해주는 생애를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의 삶 자체는 죄나 고통이나 무의미한 것일 수도 있으나,
그와 상관없이 내가 있어 남을 즐겁게 해줄 수 있다면 그것은 완미한 인간으로 사는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남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라면 좋은 것이다.
더구나 헌신하여 즐겁게 하는 것은 위대한 것이다.
네가 "치어리더"인 것이 자랑스럽다. 나도 네 옆에서 우스꽝스러운 "광대" 가면을 쓰고 싶다.

대체로 이런 말이었습니다.(훨씬 부드러운 대화체이고, 때론 훨씬 과격한 단정적 표현으로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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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토요일에 "치어리더"로 대학 운동회에서 활동하면 "치어리더" 연습은 더 안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또, 제 선문답은,
우리는 늘 "치어리더" 연습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남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더 연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몇 번이나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면' 속의 '나'이어서는 안된다.
진정 나의 삶 자체가 '피에로'이든 '광대'이든 남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즐거운 사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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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어리더 연습에 한창인 딸에게 격려를 해주기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에는 낙남정맥 등산을 가는 대신, 아내와 함께 가까운 산을 등산하면서
아내를 즐겁게 해주는 사람, 웃겨주는 사람, '광대', '피에로'. '치어리더'로 지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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