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력의 미 (불국사 좌경루의 아름다움)



예전에(김교수로부터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집을 빌려서 읽던 시절에) 불국사 "좌경루"의 아름다움을 "즉여함의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불국사의 좌경루는 매우 단순하게 건축되어 있고, 반대편의 범영루의 화려함과 대비됩니다.

 그 밋밋한 건축물을 몇 번이나 찾아보고, 윌리암 블레이크의 시를 읽고, 그 아름다움을 나름대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때의 인상을 기초로 "좌경루"의 아름다움을 "즉여함의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하였던 것 같습니다.


위의 사진이 범영루, 아래는 좌경루의 사진입니다.



"즉여함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오래 전에 쓴 글의 일부분을 다시 옮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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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여(卽如)함의 아름다움은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주창하는 '타력의 아름다움(他力의 美)'과도 그 의미가 상통하는 바가 있습니다. 

야나기는 민예(民藝)를 주장하면서 우리나라에 깔려있는 무심한 도자기에서 참다운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하고, 조선의 도자기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은 한마디로 '타력의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억지로, 의식적으로, 명품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도자기를 만들어서는 진정한 명품은 만들어지지 아니하고, 명품이란 오로지 무심한 가운데, 아무런 욕심도, 의지도, 무심하여야 한다는 각오마저도 없이 그저 지친 생활 속에서 또 하루의 일과로서, 먹거리가 없어 걱정이라는 아내의 투정을 들으면서 도자기를 만드는 가운데 탄생하는 것이며, 조선의 도자기는 바로 이런 무념의 작업, 무심한 작업의 소산이기에 아름답다고 합니다.

야나기는, 일본의 도자기는 억지로 아름다움을 지어내려는 가식으로 인하여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지겨움, 반복되는 가식의 소산이 되고 말았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야나기는 일찍이 일본의 정토종(淨土宗)에 일념(一念)을 바친 적이 있고, 정토종에서 나무관세음보살이라고 진언(眞言)을 외우는 외에는 달리 경전을 공부할 것도, 무진 수행(無盡 修行)을 하여야 할 것도 없다는 그 타력의 각성(他力의 覺醒)에 매료된 바 있습니다.

즉, 자력(自力)에 의하여, 자각(自覺)에 의하여 진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 무념한 가운데, 무심한 가운데 타력에 의하여만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영국의 윌리암 블레이크(William Blake)에 의해서 19세기초에 주창되었던 것인데, 블레이크의 시 'Innocence'는 성경에 나오는 타락 이전의 아담을 'Innocence'한 낙원의 인간이라고 상정합니다.

아담은 선악과(善惡果)를 탐함으로써 신으로부터 배척을 당하였고, 선악과를 먹은 아담은 벌거벗은 것을 부끄러워 할 줄 알게 되어 이른바 지혜라고 하는 경험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함으로써 신의 상태, 낙원의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고, 타락 이전의 낙원으로 돌아가기 위하여는 선악과를 탐함으로써 얻은 지혜, 인식작용을 제거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혜, 인식, 경험, 분별에 의해서는 오직 선악과 이후의 한계적인 위안만을 거둘 수 있을 뿐이고, 지혜, 인식, 경험, 분별을 멈추는 것만이 선악과 이전의 낙원의 상태, 신적인 아름다움과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야나기는 블레이크의 이 사상에 매료되어 2편의 책을 썼을 정도이고, 그 사상에 기초하여 조선 도자기의 아름다움은 그것을 만드는 도공들의 무심한 작업, 무념한 작업에서 갈구어진 것이라고 찬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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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http://www.gateless.co.kr/. 중 불국사 편 좌경루 부분에 전문이 실려 있습니다. 
다시 이를 옮겨 적습니다.





청운, 백운교를 올려다 보면서 그 왼쪽에 있는 건물이 바로 범영루(泛影樓) 입니다.
원래 이 종각의 이름은 수미범종각(須彌梵鐘閣)으로 수미산(須彌山) 모양의 8각 정상에 누각을 지어 그 위에 108명이 앉을 수 있고 아래로는 오장간(五丈竿:50자 높이의 칸)을 세울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수미산이란 세계의 중앙에 있는 거대한 산으로 그 중턱에는 사천왕이 있고 그 꼭대기에는 제석천(帝釋天)이 사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원래의 형상은, 인간의 온갖 번뇌를 상징하는 108번뇌를 사그라지게 하기 위하여 수미산 꼭대기에 우뚝선 누각을 구현한 것입니다.

중앙에 자하문을 두고 그 왼쪽의 수미범종각을, 오른쪽의 좌경루를 둔 것은 범부의 세계를 떠나 불타의 세계로 나아가는 다양한 방편을 제시한 것으로 보여지고, 그런 점에서 이곳을 종루로써 이용하고, 좌경루에는 불경을 보관하는 누각으로 재현하는 것이 보다 더 당초 건축자의 의도에 가깝게 접근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범영루는 751년에 창건되고 1593년 임진왜란 때에 왜구들에 의하여 불탄 것을 조선시대 두 차례에 걸쳐 중건되었다가, 1973년 복원공사 때 지금의 모습으로 중건된 것입니다.

지금도 남아 있는 범영루 아래의 석주는 아주 특이한 형태입니다.

즉, 석단위에 판석(板石)을 세웠는데, 밑부분을 넓게 하고, 중간 돌기둥을 지나면 다시 가늘고 좁게 하였다가 윗부분에 이르러 다시 밑부분과 같이 넓게 쌓았습니다.

쌓은 형태는 기둥돌이 전부 8개씩 다른 돌로 되어 있고, 이 다른돌을 동서남북의 네 방향으로 조립한 것으로서 대단히 독특한 조형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독특한 형태는 수미범종각을 받들기 위하여 고안된 의미있는 형상이라고 여겨지나 구체적으로 그 상징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 석주 사이의 공간은 항아리 모양으로 보이기도 하고 또는 안상(眼像) 같이도 보여 수미범종각을 받들고 있습니다. 그 상징을 알아내기 위하여 오른쪽에서, 왼쪽에서, 아래에서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습니다만 당초 건축자들의 의도를 명확히 알아내지는 못했습니다.

지금의 범영루는 본래의 모습보다는 훨씬 축소한 형태로 보여지고, 그 이름도 누각의 그림자가 청운, 백운교 아래 있었던 구품연지(九品蓮池)에 어린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며, 현재 이곳에는 돌거북 조각위에 세워진 북이 있습니다.

그리고, 청운-백운교에서 올려보아 오른쪽에 있는 누각이 좌경루(左經樓)입니다.


좌경루는 원래 경전을 보관하던 곳이지만, 현재는 이조 말엽에 완전히 소실되었던 것을 1973년 복원 때에 재건한 것이며, 그곳에는 경전은 없고 단지 운판과 물고기모양의 북이 있습니다. 운판은 두드려 온갖 날것들(새들, 날벌레들)의 해탈을 빌고, 물고기모양 북은 두드려 온갖 물에 사는 것들의 왕생을 비는 데 사용되는 것입니다.

범영루의 기둥이 되는 석주문양이 복잡한 데 반하여, 좌경루의 석주는 아주 단순합니다. 좌경루를 보고 있노라면, 임제록에 있는 "無事貴人 但莫造作" 이라는 글귀를 생각하게 됩니다. 장식하지 않아 조금은 둔한 것 같은 좌경루, 아름답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평범한 형태의 누각. 뭔가 할 말이 있을 것 같은데 조용히 고개숙이고 고즈녁히 서 있는 그 모습. 그러나, 오랫동안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나오는 아름다움에 대한 뜨거운 감동은 불국사의 그 어느 건축물에서 느껴지는 감동에 못지 않습니다.

조작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형상, 

간결하면서도 단아하게 본래의 지향점을 잃지 않은 자태, 
텅비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자꾸 넘쳐흐르는 견실한 인상, 
강대하지도 않고, 현란하지도 않지만, 굳이 힘을 들여 무엇을 갈구어 내지 않는 가운데서 우러나오는 강인한 생명력. 

"이런 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의 한 형태이구나" 절로 감탄하게 됩니다.

이러한 간결한 평상미(平常美)는 왼쪽의 수미범종각의 현란한 돌받침과는 뚜렷하게 대비되는 것으로서, 이와 같은 좌우대칭의 조화 역시 불국사 조형물의 전체적인 배치를 엄격하게 고려한 온전한 아름다움의 하나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