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탄신일에 집 부근의 원광사 "문수보살상"을 보고 돌아와서 (석굴암 문수보살상)


이번 석가탄신일에는 집 부근의 원광사에 들러 점심공양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로 복잡했지만, 한결같은 마음들이 모인 자리인지라 번잡하다고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처와 함께 집 뒤 금정봉을 오르다보면, 아스팔트 길이 끝나고 산길이 시작되는 곳에 통도사 말사인 원광사가 있습니다. 원광사 입구에는 약수를 받아두는 샘터가 있고, 그 뒤로 석굴암의 부조상인 문수보살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저는 매년 석가탄실일에는 가족과 함께 석굴암을 방문하여,
석가탄신일에만 일반인에 공개되는 석굴암 주실에 입장해서, 가까이에서 문수보살상을 봐 왔습니다. 벌써 10년째 계속되는 행사입니다. 
매년, 아이들은 또 석굴암 가요? 하면서도 즐겨 찾았는데, 올해는 아이들 모두 서울로 올라가서, 이번에는 집 부근의 원광사에서 석굴암 '문수보살상'을 보며, 오랫동안 묵상하였습니다. 

이 보살상은 석굴암 주실(主室)에 있는 문수보살상 입니다. 

문수보살의 이름은 범어로 "Manjusri"를 음을 차용하여 한역(漢譯)하여 "만쥬슈리"로 발음되는 "문수사리"보살로 소개되었다고 하며, 뜻으로 한역하여 묘길상(妙吉祥)보살, 묘덕(妙德)보살이라고 불립니다.

 문수보살은 일부 경전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님 입멸 후 인도에서 실재하였던 인물이라고 하며(그 경전에 의하면 히말라야 산맥 중 특정지역을 지칭하여 그곳에서의 문수보살의 활동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문수사리반열반경(文殊師利般涅般經)"에는 "사위국(舍衛國) 다라취락범덕 바라문(多羅聚落梵德 婆羅門)의 아들"이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하지만 다른 많은 경전에 따르면 단순히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로 등장하기도 하여 그 역사적 실재성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는 지혜의 공덕을 가진 보살로서 반야경을 결집, 편찬한 보살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방광화엄경'의 '입법계품'에서 문수보살은 선재동자의 구도 여행을 통하여 보살도를 실천합니다. 화엄경으로 널리 알려진 이 경전은 한편의 대하드라마이고, 읽을수록 맛이 있는 멋진 책입니다. 



석굴암의 문수보살상은 대략 2미터 50센티의 판석에 키 약 2미터 정도로 새겨져 있습니다.

머리에는 새깃같은 것으로 장식한 보관을 쓰고,
머리칼은 띠를 아래위로 두번 묶었는데 깃과 띠 등에 보석으로 장식하고 있으며,
띠는 어깨에 까지 내려와 있습니다.

얼굴은 무척 부드럽게 느껴지고,
눈썹은 위쪽으로 올려쳐 있으나 그 아래 눈길은 단아하며 온화하고,
코는 곡선을 살려 부드러우며, 입은 작고 예쁩니다.

얼굴은 약간 길게 느껴지며 네모진 듯한 턱에 도톰하게 살이 붙어있고,
허리는 약간 비튼 상태로 탄력있게 보이며 곡선으로 우아하게 처리하여 약간 육감적인 느낌마저 줍니다.

꽃잎으로 보이는 보석을 단 목걸이를 하고, 가슴에서 모여지는 긴 장식(纓絡)을 두르고 있습니다.
양 어깨에서 내려진 천의(天依)는 늘씬한 하체를 온전히 감쌌지만 전체적인 신체의 부드러움을 완전히 가리지는 못했습니다.

천의는 하체로 치렁치렁하게 흘려내렸는데 번잡스러울 정도의 주름들이 겹쳐 있고, 옆으로 날리는 모습은 마치 부드러운 바람을 맞고 서있는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석굴암 주실 맞은 편에 배치된 보현보살상과 비교하면, 문수보살상은 귀걸이가 없고, 발에는 샌달을 신었으며, 천의(天衣)와 보관(寶冠)이 비교적 단순하며, 복부아래를 가로 지르는 천의도 2개에 그치고, 딛고 선 연화대좌도 단판과 복판이어서, 두 보살상의 대칭적인 구도에 의도적인 관심을 기울인 흔적이 역력합니다.

"다라니집경"에 의하면, 
문수보살의 몸은 모두 백색으로 머리 뒤에 광(光)이 있고, 칠보의 영락, 보관, 천의(天衣)로 장엄하며 사자를 타고 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문수보살상은 머리에 5지(智)를 상징하는 오발관(五髮冠)을 쓰고, 손에는 청련화(靑蓮花)나 칼을 들어 지혜와 위엄 그리고 용맹을 나타냅니다만, 석굴암의 문수보살상은 머리에 5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는 듯한 특별한 장식의 관을 쓰고 있는 외에는 달리 별다른 지물(持物)이 없습니다.

참고로 탱화 중 협시불인 문수보살상, 사자를 탄 문수보살상, 어린 문수보살상을 보면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그러나, 석굴암 주실안에 이 보살상이 조각된 위치(제자상의 앞 부분, 범천의 다음 부분)와, 중국의 돈황 막고굴(莫高窟) 제361굴의 동측벽에 그려진 천비천발문수(千臂千鉢文殊)상과 자은사(慈恩寺)의 천발문수(千鉢文殊)상이 발견되는 점에 비추어 보면, 발우(鉢盂)를 들고 있는 이 조각상이 바로 문수보살을 표현한 것임을 추측케 하는 데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오랫동안 문수보살상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T.S.Eliot의 "Four Qurtets"의 한구절을 뜨올리게 됩니다. " 우리는 탐험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끝이라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맨 처음 출발했던 곳에 도착해있는 자신을 본다. 그리고 그곳은 우리가 이제 처음 와보는 곳이라는 걸 깨닫는다."

정녕 무엇을 느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저는 바로 그곳에 서있는 저를 새롭게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이 언제나 제가 서있던 저의 자리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한조각씩 편린을 만날 때마다 그것을 정성스럽게 주워 모으고 조심스럽게 그림책에 새겨 넣어둡니다.

편린들이 모여지는 날 비로소 저는 깜깜한 바다위에서 가랑잎처럼 나부끼는 제가 서있는 곳을 진정으로 알게 되리라 믿으니까요. 지금 저에게 주어진 도구는 오직 세심하게 사물을 관찰하고, 그 변화를 기록하며, 그 흔적들을 주워모아 본디부터 있었던 실체의 그림자를 그려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석굴암 벽면의 부조상들을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조용히 눈을 감고 그 벽면상들을 뜨올려 더듬어 내려가노라면 정작 제 손에 만져지는 것은, 벽면의 차가운 돌이 아니라 빛의 바뀜에 따라 희미하게 보여지는 끌의 흔적과도 같이 천년전 신라쩍 석공의 땀과 그들의 뜨거운 가슴입니다.

그 순간 저는 천년의 벽을 뚫고 석공의 어깨에 기대어 그 따스함에 탐닉하게 됩니다. 비로소 저는 한량없는 시간의 허무함을 뚫고 본디부터 없었고 지금도 없는 저의 그림자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석가탄신일에 보는 원광사 입구의 "문수보살상"
제게는 위대한 위안이며, 격려입니다.

석굴암 감실의 문수보살상(깊이 생각이 잠긴 형상,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비교해서 보면 좋습니다)



문수보살상 중에서 가장 멋진 것은 고려불화인 문수보살상인데 현재 일본에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화엄경 중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을 만나는 순간을 묘사한 불화인데, 투명한 나사 천이 휘날리는 천의의 묘사가 일품입니다. 

지난 해 통도사 성보박물관에서 일본에 있는 고려불화 특별전을 개최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에 오랜만에 문수보살상 고려불화도 반입되어 잠시동안 국내에 전시되었습니다. 저는 그 기간 동안 몇 차례 통도사를 찾아가서  고려불화를 봤습니다. 세계 어느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서양명화가 주는 그 어떤 감동보다도 강한, 전율을 느끼게 하는 명작입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 고려불화도 소개해보고 싶습니다.

오래 전에 석굴암, 불국사를 관찰하고 그 감상과 경과를 기록해둔 제 홈페이지 http://www.gateless.co.kr/ 에 약간 더 자료가 있습니다. 참고하실 분들의 방문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