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천룡사지를 다녀와서 (1)

(경주 남산 天龍寺址를 다녀와서 오늘의 나를 적어 본다)

지난 일요일,
산중턱에서 곁들어 먹은 동동주 때문인지 점심을 먹고나서부터 약간 마음이 들뜨고 미열이 나는 듯한 가벼운 흥분 상태에 빠졌던 것 같다.
부산으로 돌아와 다음 날 아침이 되어 어제의 가벼운 흥분 상태와 지난 밤의 이상한 꿈을 곰곰이 되새겨 보고서야, 天龍寺址를 다녀온 뒤 그것이 무엇을 남겨 놓았는지 알게 되었다.
긴 이야기는 다음에 천천히 나누기로 하고, 우선 이야기 형식으로나마 그것을 기록해 보겠다.



(天龍寺의 꿈) 
먼 옛날, 신라의 도읍지 서라벌에 김재륭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조상들로부터 김씨 가문을 이어받아 6두품으로서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을 즐기고 있었고 자신과 그의 가문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궁궐에서 공방부를 담당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농기구와 무기를 만드는 대장장이들이 멸시를 받고 있는 때였으나, 당시 궁궐에서는 선대왕의 유업을 기리기 위하여 불상과 범종 제작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어 공방부의 일을 대단히 중요시 여기고 있었으므로 그는 왕과 대신으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었다.

6두품 김재륭은 20세가 되어 부모들의 정함에 따라 6두품 하슬부의 둘째딸 소현낭자와 혼인을 하여 이듬해 피부가 유난히 흰 딸을 얻었고, 아이의 이름은 태몽을 전해들은 선친이 정한 바에 따라 천녀(天女)라고 지었다.

꿈 이야기인 즉,
부인이 하녀를 데리고 근처의 절에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갑자기 하늘이 깜깜해지더니 우박과 함께 굵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란다. 가까운 곳에 비를 피할 수 있는 인가를 발견하지 못한 부인은 놀라 조금이라고 비를 피하려는 마음으로 하녀와 함께 황급히 근처의 대나무밭에 몸을 숨기려고 들어갔다.
부인이 대나무밭에 들어서려는데 발에 무엇인가 닿아 움직이는 것 같아 내려다보니 발아래에서 방금 교미를 시작한 듯한 뱀 두마리가 있어 부인이 놀아 앞으로 넘어졌는데, 뱀들이 꼬인 허리를 풀더니 그 중 한 마리가 치마폭으로 스르륵 기어들어 오는가 싶더니 갑자기 뱃속이 뜨뜻해지면서 몸이 그득해지는 느낌이 들더라는 것이다.

6두품 김재륭은 天女를 특별히 아끼고 사랑스러워 했다. 天女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잘 따르고 자랄수록 음성이 청랑하고 얼굴이 맑았으며 하는 짓이 어질었다.
天女가 세살째 되는 해, 부인은 다시 둘째딸을 낳았는데 둘째 딸 역시 눈이 반짝이며 입을 쫑긋거리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둘째 딸은 선친이 돌아가시면서 둘째 자식도 딸이면 이름을 용녀(龍女)라고 부르라는 남긴말씀에 따라 龍女라고 지었다.
부인은 龍女를 낳고, 채 한 달을 더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김재륭으로서는 집안의 기둥이었던 선친이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부인을 잃고 크게 낙담하였으나 곧 두 딸을 껴안고 용기를 내어 생활하였으며, 당시 工房部의 주요 사업 중의 하나였던 興輪寺 梵鍾 제작사업을 훌륭하게 마무리 지어 왕으로부터도 큰 치하를 받았다.
6두품 김재륭이 서른여듧의 나이가 되었을 때, 天女의 나이는 17세, 龍女는 14세가 되었다. 두 딸들 모두 그 자태가 뛰어났고 마음이 착했으며 특히 아버지의 말씀을 잘 따랐다.
그러나, 그 해 가을이 시작할 무렵 김재륭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고, 의원들을 무수히 불러 용태를 관찰케 하고 탕약을 지어 먹었으나 별 차도는 없고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져 갔다.

두딸은 시월 어느 날 주변의 용하다는 말을 듣고 서라벌 남산 틈수골 자락에 있는 와룡암(臥龍庵)을 찾았다. 이제는 아버지의 병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의원들의 말만 듣고 있을 수만 없었고, 주변에서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와룡암의 추련선사는 아버지의 병쯤이야 쉽게 낫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쉽게 만날 수 없다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추련선사를 찾은 것이다.

天女와 龍女가 와룡암에 닿은 것은 해가 중천에 있을 때쯤이었을까 추련선사는 와룡암의 토굴에 반듯이 앉아 마치 두딸들이 오기라도 기다리고 있은 듯이 그들을 맞아들였다.

天女가 아버지의 병환이 깊어 선사의 도움을 입고자 이곳까지 왔다고 이야기를 꺼내자, 추련선사는 찌그러진 오른쪽 눈썹을 가볍게 떨면서 항시 미소짓고 있는 듯한 큰 입으로 간략히 얘기했다.
"그믐밤에 다시와"
"천녀는 대나무 20쪽, 용녀는 호박돌 20개를 가져와"
"내말대로 하면 차도가 있을꺼야"
天女와 龍女는 더 이상 묻지 못하고 남산을 내려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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