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천룡사지를 다녀와서 (2)

 천룡사지를 다녀와서..(2)




(天龍寺의 꿈2)
天女와 龍女는 와룡암을 다녀온 뒤 그믐밤이 될 때까지
부지런히 대나무와 호박돌을 모았고,
그믐날 일찍 하인들을 채근하여 대나무와 호박돌을 와룡암으로 옮겨놓고,
그믐달이 뜰 무렵에 와룡암의 추련선사와 대좌하였다.

추련선사는 유달리 흰 도포를 입고 있었고,
그 도포는 희다 못해 반짝이듯이 빛나고 있는 것 같았으며,
그 앞에 오랫동안 마주 앉아 있으면 그 반짝거리는 빛깔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 흰 도포는 그믐밤의 옅은 달빛을 만나 가볍게 떨리듯이 빛을 발하면서
추련선사의 주위를 감싸안고 있는 따뜻한 보살핌처럼 평안하게 드리워져 있는 모습이었다.

떨리는 듯 빛나는 기묘한 흰 도포와 추련선사의 찌그러진 오른쪽 눈썹은 유달리
길게 쳐져 있었고, 큰 입은 지난번에도 그랬듯이 크게 미소짓고 있었다.
天女와 龍女를 마주 앉힌 추련선사는 두딸의 손을 가볍게 모아 쥐고는 지난 번보다는
훨씬 온화한 음성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천녀야, 용녀야, 내 말을 잘 듣거라.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 말을 잘 새겨듣고 한치도 틀림이 없이 시행해야만 아버지의 병환을 고칠 수 있느니라"
"천녀야, 네가 들어온 이 골짜기 이름이 무엇인 지 알고 있느냐"

天女는,
"예, 선사님, 이 골짝을 사람들은 틈수골이라고 부르는 줄 아옵니다"
라고 공손히 대답했다.

17세의 꽃다운 나이에 아버지의 사랑 속에서 귀엽게만 자랐는 줄 알았더니 깊은 산골 두자매만이 늙은 중앞에 앉아 느닷없는 물음을 받고도 당당한 낯빛을 잃지 않고 공손히 물음에 답하는 모습이 추련선사에게는 가벼운 놀라움이었으나 보기 좋은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큰 입으로 미소지었다.

"용녀야 너는 너희 자매가 나를 찾아온 이 절 이름이 무엇인 줄 들었더냐"
라고 물었다.
"예, 선사님, 와룡암이라고 아옵니다"
龍女는 얼른 대답하였다. 언니를 따라 이곳까지 왔지만 막연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두려움 중에서도 아버지의 병환을 고치기 위하여는 무엇이라도 하겠다는 당돌함이 배어져 있었다.

추련선사는 두딸의 대답을 듣고 긴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이 곳은 본디 서라벌 남산의 용수골이라고 불렀다. 아무런 변화도 없이 고요한 곳이었지. 그런데, 용수골 아래의 지하 세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큰 싸움이 있었다. 지하세계를 다스리던 황룡이 지각을 뚫고 사람사는 곳으로 나가 사람들을 이간시키고 부인들을 음란케 하고 관리들을 탐욕케 하였다. 황룡의 장난은 서라벌의 궁궐에까지 미쳐 왕비가 궁궐에 드나드는 스님과 음행을 즐기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이를 보다 못한 부처님은 지장보살을 보내 지하세계를 평정케 하였다.

 지장보살은 본디 땅아래 세계의 모든 미물들을 부처님께 인도하기를 바라는 대원을 세워 지하의 모든 미물들을 교화시켜 온 지라 황룡의 장난이 어떤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황룡의 힘은 지장보살이 맞서 겨누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것 이어서, 함부로 황룡을 억누르질 못했다. 지장보살은 궁궐에까지 미친 황룡의 장난을 막기 위하여, 왕이 남산 쪽으로 행차를 나온 때에 까마귀를 부려 왕위를 날면서 그 위급함을 외치게 했다. 왕은 행차 중에 까마귀의 위급한 울음소리를 듣고 일관에게 그 연유를 알아보게 했다. 일관은 급히 까마귀를 좇아갔더니 까마귀는 지금의 남산 북쪽 통일전 건너편에 있는 큰 연못으로 날아가더니 사라져 버렸다. 일관이 낙심하여 돌아오려는 데 연못에서 흰 수염을 한 노인이 나타나 글월이 적힌 두루말이를 주어, 이를 왕에게 바쳤다. 왕이 두루말이를 펴 보자 그곳에는 궁궐의 금궤를 화살로 쏘면 둘이 죽고, 이를 쏘지 아니하면 하나가 죽는다는 글이 적혀져 있었다. 왕은 일관이 이를 풀어서 '화살을 쏘면 백성 둘이 죽고, 이를 쏘지 않으면 하나인 왕이 죽는다'는 말을 듣고, 급히 장수를 시켜 궁궐의 금궤를 쏘게 하니 그 속에는 벌거벗은 왕비와 간부인 스님이 화살에 궤여 죽어 있었다. 왕은 까마귀의 울음소리에 감사하고 그날은 모든 백성들이 붉은 밥을 해서 지붕 위에 올려놓도록 하고, 흰 수염을 한 노인 나온 연못을 서출지라고 부르도록 했다."

추련선사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지 천천히 그러나 자신을 재촉해 가며 서둘러 말을 이어갔다.
"황룡은 음란하여 청사와 정을 나누었고, 청사의 푸르른 등깔과 하얀 뱃살과 미끄러지는 아랫살 흐름을 탐닉하였다."

추련선사는 황룡의 음란함을 취한 듯이 풀어 나가려 했으나, 天女와 龍女가 아직 숫처녀인 지라 말을 더 잇지 못하고 뒤이은 이야기로 말을 바꾸어 나갔다.

"어느 날 황룡이 몸을 낮추어 청사와 함께 대나무 밭에서 은밀한 대낮의 사랑을 나누고 있는 때였다. 마침 우박을 피하려 들어서던 너희 어머니가 그만 허리 꼬인 황룡의 등을 밟고 미끄러지고 말았다. 황룡은 느닷없이 등을 밟히고 잠시 정신을 잃고 있던 차에 청사는 너희 어머니의 넘어진 고쟁이 사이로 살짝 내비친 하얀 피부와 스치는 향기로운 냄새에 끌려 꼬인 허리를 풀고 스르륵 어머니의 치마자락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떠나고 나서야, 황룡은 몸을 다시 일으켜 정신이 들어 청사가 자신을 떠나고 없다는 것을 알았고 한없는 수치감을 느꼈다."

추련선사는 예전에 태몽이라고 들었던 이야기와 자기 어머니 얘기가 나오자 눈빛이 더욱 반짝이며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두딸에게 사랑을 잃은 황룡의 심정을 세세히 풀어서 얘기하지 못하고 다음 이야기로 말을 이어나갔다.

"황룡은 수치심에 한동안 몸을 땅속에 감추고 있더니 예전에 용수골이라고 부르던 이 골짜기의 틈새를 타고 땅에서 삐져나와 둘째 아이를 낳던 너의 어머니의 태반에 흑단을 넣어 어머니를 죽게 하고, 너희 아버지가 흥륜사를 들러 오던 중에 마을에서 샘물을 얻어먹는 틈을 타 영유환이라는 극약을 함께 마시게 하여 깊은 병중에 들게 하였다.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이 골짜기에서 용이 삐져나온다 하여 틈수골 이라고 부르고 있고, 용이 삐져나오는 골짝 초입에 와룡암이라는 암자를 지어 황룡의 분노를 달래려고 했다"

추련선사의 말을 듣고 있는 두딸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황룡에 대한 치미는 듯한 분노와 복수심을 견딜 수가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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