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에게
이제 완연한 겨울인가 보다.
지난 주에는 오랜만에 대전에서 친구들과 만났는데,
마침 함박눈이 내려 아이들과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을 만들면서 신나게 겨울 오후를 즐겼다.
마침 함박눈이 내려 아이들과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을 만들면서 신나게 겨울 오후를 즐겼다.
그곳 텍사스의 겨울은 어떤지 궁금하다.
지난 주에는 가족들과 사막을 지나 서쪽으로 자동차 여행을 다녀오겠다더니, 좋은 여행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요사이 나는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생각하곤 한다.
흙과 바람과 물과 불로 만들어져 어머니의 태를 빌려 세상에 태어나고, 또 그 열기를 불태우면서 부딪치고 궁글러 한 생애를 살다가, 다시 흙과 바람과 물과 불로 되돌아 가는 우리들 육신은, 진정 그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되묻곤 하는 요즘이다.
나는 그런 사념의 깊이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면 늘 선인들이 남긴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
일찍이 생애의 무상과 허무를 넘어 존재의 참가치에 대해 의미있는 흔적을 남긴 선인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어느듯 막연한 허무를 넘어 그속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의미와 가치에 대해 훌륭한 위로와 격려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일찍이 생애의 무상과 허무를 넘어 존재의 참가치에 대해 의미있는 흔적을 남긴 선인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어느듯 막연한 허무를 넘어 그속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의미와 가치에 대해 훌륭한 위로와 격려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스토엡스키를 만나고,
니이체를 만난다.
노장을 만나고 도연명을 만나고,
나가르쥬나를 읽는다.
니이체를 만난다.
노장을 만나고 도연명을 만나고,
나가르쥬나를 읽는다.
그런 가운데, 요즈음 내가 만난 가장 큰 위로와 격려는 석굴암, 불국사이다.
석굴암 본존불을 뵙고, 불국사 극락전 48계단을 오르내리노라면, 어느듯 나는 신라시대의 조상들이 무상과 허무를 넘어 거두었던 위대한 승리의 염원과 찬미를 따라 느끼게 되고, 그렇게 한나절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늘 가슴벅찬 희망과 감사에 휘감긴 황홀한 느낌으로 눈부신 나자신을 느끼게 된다.
석굴암 본존불을 뵙고, 불국사 극락전 48계단을 오르내리노라면, 어느듯 나는 신라시대의 조상들이 무상과 허무를 넘어 거두었던 위대한 승리의 염원과 찬미를 따라 느끼게 되고, 그렇게 한나절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늘 가슴벅찬 희망과 감사에 휘감긴 황홀한 느낌으로 눈부신 나자신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간절한 마음으로 석굴암 본존불을 뵙기만 해도, 소원하는 마음으로 불국사 극락전 48계단을 오르내리기만 해도, 천년의 시간도, 죽음과 탄생의 순환도, 부질없는 탐욕과 온갖 미망함도, 겨울눈이 봄볕에 녹아내리듯 허물어져 버리고, 오직, 천년전 그곳에서 모든 껍데기를 불어서 꺼버린 위대한 영혼을 조각해낸 석공의 마음만이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고, 돌계단의 상징으로 보살행의 간절함을 표현해낸 신앙인의 뜨거운 열정만이 빛과 공간을 지배하고 있음을, 뜨겁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 !
황홀한 예배의 현장이 아닌가?
그곳은, 뜨거운 열정의 체험장에 다름아니지 않은가?
그곳은, 그러니, 가고 또 뵈어서, 느끼고 또 느껴서, 가슴 가득이, 선인이 남긴 찬미와 염원의 절절함을 담아보기도 해도, 문득, 우리 인생은 또다시 의미있고 가치로우며, 한걸음 나아가 이 보잘 것 없는 인생이 한순간의 발심으로 얼마나 황홀하게 변모할 수 있는 것인지를 너무도 쉽게 알 수 있지 않는가?
그곳에서, 우리는.
황홀한 예배의 현장이 아닌가?
그곳은, 뜨거운 열정의 체험장에 다름아니지 않은가?
그곳은, 그러니, 가고 또 뵈어서, 느끼고 또 느껴서, 가슴 가득이, 선인이 남긴 찬미와 염원의 절절함을 담아보기도 해도, 문득, 우리 인생은 또다시 의미있고 가치로우며, 한걸음 나아가 이 보잘 것 없는 인생이 한순간의 발심으로 얼마나 황홀하게 변모할 수 있는 것인지를 너무도 쉽게 알 수 있지 않는가?
그곳에서, 우리는.
K ! 이 그림은 석굴암 주실의 보현보살상(普賢菩薩像) 이다. 보현보살은 범어로 "Samanthabhadra"로, 한자로는 삼만다발타라(三曼多跋陀羅)라고 하며, "Sammandha"는 넓다는 뜻으로 덕이 두루 온누리에 미친다는 것을 의미하며 한문으로 "보(普)"라고 하는 것이고, "Bhadra"는 지극히 원해서 선(善)을 가다듬는 까닭에 한문으로 "현(賢)"이라고 하며, 그 이름은 보살행의 "넓게 뛰어남"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문수보살과 함께 보현보살은 고대 인도사상의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은 것으로 불교의 순수한 보살상인데, 문수보살은 대승불교 초기에서부터 나타나고, 보현보살은 그보다 후기 경전에서 자주 등장한다. 문수보살이 지혜를 상징한다면, 보현보살은 대행(大行)을 상징하는 보살로서, 수행의 과덕(課德) 그 자체를 하나의 이상적 행원(行願)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불교의 실천행의 상징이기도 하다. "대방광불화엄경"에서는 여러 부분에 보현보살의 덕행과 행원이 묘사되어 있는데, 특히 "여래출현품(如來出現品)"에서는 모든 보살도의 구극(究極)에 달한 보살로 표현되고 있어,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여래의 비밀처를 통하고, 일체 중생의 근기(根機)를 잘 알아 중생에게 해탈의 길을 잘 열어 보이며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해설함에도 능한 무량의 덕성을 갖춘 보살이라고 한다. 그리고 화엄경의 마지막 부분이며 압권인 "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의 가르침에 따라 53 선지식(善知識, 훌륭한 스승)을 찾는 구법행로의 마지막에 보현보살을 찾아가 10가지 지혜의 법문을 얻음으로써 모든 경계가 부처님과 평등하게 되어 구도의 여정을 끝맺는다. |
- 여기에서 보현보살은, 저 유명한 10대원(大願)을 설하는바,
- 첫째, 모든 여래를 예배 공경하며,(禮敬諸佛)
- 둘째, 부처님을 우러러 찬탄하며,(稱讚如來)
- 셋째, 널리 닦아 공양하며,(廣修供養)
- 넷째, 스스로 업장(업장, 잘못된 행위로 말미암은 장애)을 참회하고,(懺悔業障)
- 다섯째, 남의 공덕을 기뻐하며,(隨喜功德)
- 여섯째, 설법하여 주기를 청하고,(請轉法輪)
- 일곱째,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래 머무르시기를 청하고,(請佛住世)
- 여덟째,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고,(常隨佛學)
- 아홉째, 항상 중생들에게 순응하며,(恒順衆生)
- 열째, 두루 모든 공덕을 중생에게 돌리며 불법(佛法)의 증득을 원하는 것,(普階廻向)의 열가지가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광종때 균여(均如)대사가 만든 보현십원가를 보면, 당시 이미 보현보살 신앙이 민중에까지 널리 퍼져 있음을 알 수 있고, 균여대사는 불교의 대중화를 위하여 예경제불가, 칭찬여래가 등 보현 10원에 총결무진가 한 수를 더하여 총 11수의 노래를 지어 불렀다.
석굴암의 보현보살상은 주실 입구의 왼쪽에서 두번째로 범천상 옆에 있다.
몸을 왼쪽을 틀어 본존상을 향하고 있으며, 눈은 단아하고 코와 입은 작고 온화한 느낌이고, 양 어깨를 덮은 천의는 부드럽게 전신을 감싸고 있으나, 천의의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인하여 전체적으로 발랄한 운동감을 느끼게 된다. 보현보살의 천의는 복부에서 무릎사이에서 4개가 같은 곡선을 그리며 가로 지르고 있고, 그 중앙부분의 아랫쪽으로 구슬장식띠와 허리띠가 내려져 있다.
이처럼 천의가 4개씩이나 표현된 것은 석굴암에서 이 보현보살상이 유일하다. 두발은 약간 벌려 연화대좌를 사뿐히 밟고 섰는데, 왼쪽 발에 무게 중심을 준 듯, 오른발은 옆으로 살짝 비켜 딛고 있는 형상이다.
오른 손을 내려서 손가락을 섬세하게 구부리고 있으며, 왼손은 가슴에 들어올려 경책(經冊)으로 보이는 두루마리를 들고 있다. 손목에는 구슬모양의 보석이 박힌 팔찌를 하고, 발목에도 여러 겹의 발찌가 장식되어 있고, 온몸에 찬란한 장신구를 걸쳐 전체적으로 아름답고 고귀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오른 손을 내려서 손가락을 섬세하게 구부리고 있으며, 왼손은 가슴에 들어올려 경책(經冊)으로 보이는 두루마리를 들고 있다. 손목에는 구슬모양의 보석이 박힌 팔찌를 하고, 발목에도 여러 겹의 발찌가 장식되어 있고, 온몸에 찬란한 장신구를 걸쳐 전체적으로 아름답고 고귀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K !
석굴암의 보현보살상은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신라시대 석공의 아름다운 마음을 한껏 느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선물인가?
석굴암 본존불에 예불을 드린 후에 본존불을 해도는 방향(시계방향)으로 돌면서, 10대 제자상과 11면 관음보살상에 찬미를 드리고, 마지막으로 돌아서서, 문수보살상과 함께 대칭적인 구도로 배치된 보현보살상에 지극한 심정으로 예불,
찬미하는 심상(心像)의 극치는,
오직, 석굴암의 예배공간을 물려받은 우리들만의 특권이리라.
봄이 오기 전에 가족들과 함께 돌아온다니, 겨울의 꺼져가는 기세속에서 가족들과 함께 석굴암에 가볼 수 있기를 기다리겠다.
아무쪼록, 그곳 텍사스의 사막바람 속에서도 보현보살상을 묵상함으로서 한량없는 행원(行願)을 명상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가족 모두에게도 안부를 전해주길 바라고, 내내 건강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