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 앞 마당의 당간지주

 당간지주(幢竿支柱)


불국사의 당간지주에 대하여 보다 애정을 갖기 위하여, 당간지주가 왜 만들어 지는지, 당간지주와 당간의 원래 모습은 어떠한 것인지를 소개합니다.

절 입구에 휘호나 깃발을 내걸기 위하여 만들어진 당간(幢竿)은 석탑과 더불어 초기 사찰의 대표적인 조형물의 하나이고, 그 규모에 비추어 보면 건립기간이나 비용이 석탑이나 불상에 비하여 결코 적지 못하지 않았으리라 보여집니다.

당간은 불교가 성행하던 초기때부터 당(幢)과 번(幡)으로 불전을 장엄하게 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보여지나, 통일신라시대때에 성행한 당간은 금동용두(金銅龍頭)의 형식을 갖춘 것으로서, 이러한 형태는 동양권에서도 통일신라에서만 만들어진 독창적인 구조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돈황 막고굴(莫高窟) 제331굴의 벽에 그려진 위 그림과 같은 벽화에 의하면, 중국에서도 오래전부터 사찰의 입구에 당간지주와 당간을 세워 이를 번간(幡竿)이라고 하였고,
일본에서는 이를 번간(幡竿) 혹은 찰간(刹竿)이라고 하였으며,
이를 받치는 석조지주(石造支柱)에 대해서도 일본에서는 번간지주(幡竿支柱), 찰간지주(刹竿支柱)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당간지주는 당간(幢竿)을 세우기 위한 받침물 입니다.


즉, 두 개의 마주 선 당간지주 사이에 철제로 된 당간을 세우고 그 꼭대기에는 용두(龍頭)를 세우는 형태인데,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땅속 깊이 당간지주 받침을 묻고, 당간지주에 난 2-3개의 구멍을 통하여 당간을 관통하여 지주와 함께 묶어두게 됩니다.

당간의 기둥은 대나무와 같이 마디로 장식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고, 용두(龍頭)의 머리 속에는 활차(滑車, 도르래)가 장치되어 있으며, 용두의 목부분에 구멍이 있어서 도르래에 대략 10m 정도 길이의 깃발(幢)을 매달아 둠으로써 사찰을 장엄하게 장식하려고 하였고, 깃발에는 불경의 중요구절이나 그때마다의 휘호를 적어 휘날리게 하였습니다.


통일신라 시대의 당간의 형태 특히 당간 꼭대기의 모습에 대하여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가, 1977년 풍기(豊基)시내 하수도 공사에서 발견된 금동용두(金銅龍頭)의 출현으로 그 세부적인 복원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고려때 높이 73.8cm 정도의 미니어쳐(Miniature) 형태로 만들어진 금동보당(金銅寶幢, 국보 제136호, 호암미술관 소장)이 보존되어 있어 이것을 통하여 당간과 당간지주의 원래 형태를 알 수 있습니다.

당간의 높이는 현존하는 통일신라대의 갑사(甲寺) 철당간(鐵幢竿)이나 고려시대의 것인 용두사(龍頭寺) 철당간(鐵幢竿)을 통하여 대략 그 높이를 추정할 수 있고, 특히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당간의 높이가 칠장(七丈, 70자가 되니 이는 대략 20m)이라고 하였으므로 그 웅대한 높이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정도의 높이를 가진 당간을 만들기 위하여는 목제로는 깃발을 달고 견딜 수 없을 정도여서 일찍부터 철제로 만들어졌으며, 당시에 이 정도의 철제 당간을 만들기 위하여는 오랫동안 철제를 모으고, 그것으로 당간을 주조한 다음, 금동의 용두를 만들기 위하여 상당한 정성과 노력을 다하였으리라 짐작됩니다.
특히, 용두는 풍기에서 발견된 금동용두나 호암미술관에서 소장하는 금동보당의 용두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한껏 위엄을 부린 용머리에서 당시 제작자들의 예술적인 품격이나 신앙심을 알 수 있습니다.

풍기에서 발견된 용두(龍頭)는 그 모습이 닭의 형태를 기본으로 한 것으로 머리에는 닭벼슬 같은 것이 있고, 벼슬의 바깥쪽으로 날카로운 주름이 새겨져 있으며, 윗 입술부분이 날카롭게 굽이쳐 솟구쳐 있고, 윗턱뼈와 아래턱뼈에는 위로 솟아난 이빨이 있으며, 귀 부분이 뒤로 재쳐져 있고, 귀 바로 옆에는 파손된 뿔의 흔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는 다른 데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머리모양이고, 그 형상이나 장식에 비추어 이것이 삼국유사 등지에서 흔히 인용되는 계룡(鷄龍)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고,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호암미술관의 금동보당은 기단부까지 설치되어 있는 당간지주와 당간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하여 줍니다.
당간지주는 기단부 위에 당간이 일곱 마디로 높이 솟아 있고 그 위에 용두가 있습니다. 용머리의 형상은 풍기에서 발견된 것보다 화려하고 양 옆으로 난 수염이 매우 특징적인 모습입니다.

그러한 화려한 원래의 모습과는 달리, 지금, 불국사 앞 마당에는 마치 버려진 듯이 두 쌍의 당간지주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것이 원래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옮겨져 현재의 위치에 세워져 있는 것인지는 잘 알 수 없으나, 너무나 무심하게 버려져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러나 쓸쓸한 불국사 당간지주에 가까이 다가서서, 정겨운 마음으로 당간지주를 올려다 보면서, 통일신라 당시에 이곳에 세워져 장엄하였을 당간(幢竿)을 상상해 봅니다. 그러면, 어느새, 마음은 한껏 부풀어 깃발과 함께 나부끼고, 우뚝선 당간 아래 마음 또한 불퇴전(不退顚)의 각오로 당당해집니다.


불국사의 쓸쓸한 당간지주 ! 그러나 정녕 쓸쓸한 것은 당간지주가 아니라, 바쁘게 스쳐가는 우리들 마음인 듯 합니다.


(운문사 은행나무, 마치 당간지주처럼 높고 당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