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 감실의 미륵보살상


석굴암 감실의 미륵보살상은, 본존상의 뒷편 11면 관음보살상을 마주보고 오른쪽으로 두번째 감실에 모셔져 있습니다. 


 미륵보살(彌勒菩薩)은 범어 "Maitreya"을 음역한 것으로서, 그 본 뜻은 "자비에서 생긴 것"이라는 뜻이고, 한문으로는 "자(慈)씨", "자존(慈尊)"이라고 번역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현재의 부처님이라고 한다면, 미륵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 이후에 오실 미래의 부처님입니다. 원래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였으나 현재는 도솔천에서 수행중에 있으며, 석가모니 부처님 입멸 후 56억 7천만 년(혹은 8만 4천세)이 지난 다음에 이 세상에 모셔서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하며, 3번의 설법(彌勒參會)으로 모든 중생을 제도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불설관미륵보살상생도솔천경(佛說觀彌勒譜薩上生도率天經)"과 "불설미륵하생성불경(佛說彌勒下生成佛經)", "불설미륵대성불경(佛說彌勒大成佛經)"을 합하여 "미륵상부경"이라고 합니다.

미륵신앙은, 미래불인 미륵을 믿고 용화삼회의 설법에서 미륵을 만나 구원되고자 하는 것이며, 그 먼 미래를 기다릴 수 없는 중생들은 열심히 수행하여 선근(善根)을 쌓아 죽은 뒤 도솔천에서 상생하여 미륵보살 옆에서 지내다가 미륵이 하생할 때 따라 지상으로 돌아와 미륵의 설법을 청문코자 함을 근본으로 합니다.

미륵신앙은 일찍부터 민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시대 때부터 미륵신앙이 발전되어 왔고, 후삼국의 궁예같은 이는 자신이 바로 미륵이라고 자칭하며 백성을 호도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마을마다 석상을 만들어 미륵이라 칭하고, 득남(得男)과 치병(治病) 등을 기원하는 현실구복적인 신앙으로 발전하였고, 일부는 무속과 결합되기도 하였습니다.

미륵보살상은 일반적으로 여래형 또는 보살형으로 만들어지며, 보살형으로는 반가사유상이 삼국시대부터 많이 조성되어 훌륭한 작품이 남겨져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삼국시대 때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는 국보 78호와 83호인 두 구의 금동 반가사유상은 유례없이 아름다운 형태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국보 78호인 이 금동 반가사유상은 치밀하게 장식된 보관을 쓰고 있는데 이를 단순히 탑형관(塔形冠)이라고도 하고 "일월식삼산관(日月飾三山冠)" 등으로 불리어지는데, 긴 눈썹과 눈, 오똑한 콧날 그리고 자비로운 미소, 예리하면서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진 얼굴은 내면으로 침잠하여 깊은 법열(法悅)에 빠져 있는 보살의 표정을 훌륭하게 표출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립 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이 불상만을 보기 위하여 저는 여러번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고, 그때마다 그 아름다음의 치밀함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석굴암 감실의 미륵상은 가부좌하여 정면으로 단정하게 앉은 보살상으로 표현되어 있고, 높은 보관을 썼는데 이마 위에도 머리카락이 한줄 묘사되어 있고, 그 좌우와 중심부에 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중앙의 꽃무늬는 여러 겹으로 높이 올려져 탑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얼굴은 갸늠하고 눈,코,입, 귀가 단아하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오른 손은 무릎에서 손가락을 구부리면서 손바닥이 밖으로 보이게 하였으며, 왼손은 가슴까지 들어올려 꽃봉오리를 얹어두고 있습니다.

꽃봉오리는 미륵보살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머리에 쓰는 보관의 탑모양과 함께 이 조각상이 미륵보살임을 추정하게 하는 유력한 자료가 됩니다. 가슴에는 두 겹의 장신구를 하였고, 이는 고리장식이 비교적 큰 것처럼 보이고, 양 손에는 팔찌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 조각상은 맞은 편의 지장보살과 함께 현재와 미래의 구원상을 상징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