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여행 단상 (3) - 던비건 성과 정원(Dunvegan Castle and Gardens)

스코틀랜드 여행 단상 (3) - 던비건 성과 정원(Dunvegan Castle and Gardens)

스코틀랜드 서북 해안의 스카이 섬 여행 이튿날.
숙소의 주인아줌마에게 가볼 만한 곳을 추천해달라고 하였더니, 성(城)을 많이 보았겠지만 던비건 성이 가볼 만하고 그곳 정원이 일품이라고 추천한다.

‘정원’ ? 멕시코 난류가 그 마지막 온기를 손수건 한 장에 담아 펄럭이게 하는 이곳, 스코틀랜드 서북 해안의 ‘무어랜드(moorland)’에 가볼 만한 ‘정원’이 있다고 ?

던비건 성은 던비건 지역에 살았던 맥클라우드 문중(스코틀랜드 전통씨족 집단, The Clan of Macleod)의 성(城)이다. 13세기 무렵 처음 던비건 해안지역에 성을 짓기 시작한 사람은 맥클라우드 문중의 맥클라우드(Macleod of Macleod)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소박하고 정감이 가는 성이었고, 해안으로 난 창의 풍경이 아름다웠다. 1층 벽면에 전시된 19세기말, 20세기 초 성 주변 생활상을 보여주는 사진들도 이채로웠다.
정작 관심은 성(Castle)보다는 ‘정원’(Gardens)에 있어 성 내부를 둘러보고, 바로 정원으로 향했다.


정원은 크게 폭포가 있는 정원(The Waterfall Garden), 원형 정원(The Round Garden), 사각 정원(The Square Garden)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던비건 성의 잘 의도된 정원은 단순하고 투박하지만 주변의 거친 환경과 대비되어 결국 아름다은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다.

황량한 스코틀랜드 서북부 섬 해안가에 있는 것이라고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식물과 갖가지 색깔의 꽃들은 자연스럽게 그런 감정을 가지게 하는 것 같았다.
정원을 걷는 동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단순히 꽃과 식물을 가꾸어둔 꽃밭이 아니리라.

잉글랜드 서부의 스톤헨지를 방문했을 때도 이곳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스톤헨지에는 수직의 거대석들이 원형으로 둘러 세워져 있었고, 그것은 방문자들에게 주술적 신비감을 강하게 심어주었다. 이렇게 큰 돌들을 어디에서 어떻게 옮기고 곧추 세워 놓았을까, 어떻게 그런 작업들이 가능하였을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거대석들.
그 거대석들은 기하학적 원형인 동그라미 형태로 배치되어 있었다.
거대석의 기이함과 기하학적 원형 배치는 주변의 넓은 구릉지대가 주는 풍경과 어울려 마침내 방문자들의 정신세계를 압도하고, 우주적 기본의식(신비감과 같은 말이다)에 도취되게 하는 것이리라 생각하였다.

던비건 해안가에 가꾸어 정원은, 스톤헨지의 거대석의 원형 배치처럼, 미리 만들어둔 작은 길을 따라 걸어가면, 쏟아지는 물과 원형, 사각 형태의 정원을 방문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설계자가 만들어 놓은 작은 길을 따라 차례대로 정원을 거니는 동안 우리네 마음은 어느새 일상적, 상투적 감정상태를 떠나, 기본적 감각형태로 존재하는 우주적 원형과 동일체 의식을 느끼게 하고, 결국 그것을 질서감, 신비감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

던비건 성의 정원을 설계하였던 이들이 그저 마음가는 대로 정원을 가꾸웠다고 해도, 결국 그들의 마음이 저절로 가는 곳이란 이런 질서감, 신비감을 느끼게 하는 형태를 선택하게 된 것이었으리라 짐작해본다.

던비건 성의 정원에는 뜻밖에 여러 종류의 꽃들이 가꾸어져 있었다.
찰스 다윈은 꽃에 대해서 지질학적으로 아주 짧은 기간에(수 천만 년) 엄청나게 폭발적인 다양성을 나타낸 것이어서 “Abominable Mystery"라고 경이로움을 표했다.
인간이 꽃을 보면 ‘아름답다’고 느끼는 되는 그 인식구조.
던비건 성의 정원은 잘 가꾸어진 꽃들로 가득 채워 인간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그 인식촉발 구조에 발판을 두고, 관찰자들에게 편안함과 아름다운 느낌을 가지게 하였다.

정원을 둘러보는 동안 그곳이 거센 바닷바람으로 출렁이는 스코틀랜드 해안가가 아니라, 맛있는 식사를 하고 푹신하고 따뜻한 의자에 몸을 던져 놓은 것 같은 편안한 안도감을 느끼게 하였다.

정원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인간의 생애란 대체로 신비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구나. 그 속에서 안도와 질서를 느끼게 되는구나. 씨족들은 권위로 성을 쌓고, 정원을 가꾸어서 성 속에 사는 사람들과 생활을 신비로운 것으로 색칠하였구나, 생각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아이들이 가져온 우산을 같이 쓰고 가자며 뛰어온다.

우리 인간의 감각과 인식 그리고 생각이란 과연 그것 밖에서 온전히 관찰할 수 있는 대상물이 되는 것일까, 정원을 걸으면서 그곳이 신비감을 의도한 구조적 설치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 속에 있는 어떤 의식덩어리에서 뜨오르는 것일까, 오랫동안 던비건 성에서 살고 정원을 가꾸었던 이들의 무의식 속에 과연 의도된 신비감이라고 단정할 만한 흔적이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이어지면서 어느새 던비건 성 주차장에 도착했다.

멀리서 다시 보는 던비건 성의 주변 풍경들. 어느새 그곳은 황량한 무어랜드가 아니라 아늑한 동네마을처럼 느껴졌다. 성을 세우고 정원을 가꾸었던 이들의 소원과 계략에 완전히 먹혀들었던 탓이리라. 가벼운 기침이 났다. 계략에 빠지고, 그 빠짐을 알아챈 양 느끼는 즐거운 상상력이 주는 흔들림이다.